소비자·시장
집단소송법은 시민의 방패인가, 새로운 과잉규제인가
9월 정기국회 개원에 맞춰 소비자·시민단체들이 집단소송법 처리를 요구했습니다. 소액·다수 피해자가 개별 소송의 비용 때문에 권리를 포기하는 현실은 개선해야 합니다. 그러나 적용 범위, 옵트아웃, 증거개시와 소급적용을 제대로 설계하지 않으면 기업과 중소사업자에게 예측하기 어려운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시민이 너무 작아 소송하지 못하는 시장도, 소송 위험이 너무 커 도전하지 못하는 시장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한국YMCA전국연맹·경실련·참여연대 등 19개 단체가 참여한 ‘소비자 보호를 위한 집단소송법 제정연대’는 9월 1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들은 9월 정기국회에서 집단소송법을 처리하고, 실효성을 위해 옵트아웃 방식과 증거개시제도를 포함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집단소송 입법 논의가 새로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22대 국회에는 적용 대상과 절차가 서로 다른 복수의 법안이 제출돼 있습니다. 박균택 의원 등 32인이 2026년 3월 9일 발의한 의안번호 2217322 법안도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돼 심사 단계에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확정된 것은 ‘집단소송법이 곧 시행된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정기국회에서 논의를 재개하라는 시민단체의 요구가 나온 것이며, 어떤 법안을 중심으로 어떤 절충안을 만들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집단소송은 무엇을 바꾸는 제도입니까?
지금도 같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함께 소송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마다 위임과 참여 절차를 밟아야 하고, 손해액이 작으면 시간과 변호사 비용 때문에 권리행사를 포기하기 쉽습니다. 한국의 손해배상형 집단소송은 현재 증권 분야에 제한적으로 운용됩니다.
집단소송은 공통된 원인으로 피해를 본 다수 가운데 대표당사자가 소송하고, 법원이 허가한 범위에서 결과가 전체 집단에 미치도록 하는 절차입니다. 개인정보 유출, 결함 제품, 환경오염이나 반복적인 소비자 피해처럼 한 사람의 손실은 작지만 전체 피해는 큰 사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핵심은 기업을 더 많이 처벌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흩어진 피해 때문에 위법행위의 비용이 기업에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문제를 고치고, 피해자는 한 번의 절차로 구제받도록 만드는 데 있습니다.
옵트아웃과 증거개시는 왜 쟁점입니까?
- 옵트인: 소송에 참여하겠다고 명시한 피해자에게만 판결 효력이 미칩니다. 자기결정권은 분명하지만 소액 피해자는 절차를 모르거나 참여 비용 때문에 빠지기 쉽습니다.
- 옵트아웃: 일정한 집단에 포함된 피해자는 제외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판결 효력을 함께 받습니다. 구제 범위는 넓어지지만 충분한 통지와 제외 기회가 보장되지 않으면 당사자의 선택권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 증거개시: 제품 설계, 내부 보고서와 사고 기록처럼 기업 내부에 집중된 자료에 피해자가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장치입니다. 정보 비대칭을 줄이지만 영업비밀 유출과 과도한 자료제출 부담을 막는 보호명령과 범위 제한이 필요합니다.
- 소급적용: 일부 법안은 시행 전 발생한 사유에도 새 절차를 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래된 피해의 구제라는 논거와 법적 안정성·신뢰보호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충돌합니다.
소비자단체의 요구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피해액이 몇 천 원이나 몇 만 원이라면 잘못이 분명해도 개인이 소송하기 어렵습니다. 개인정보 유출은 당장의 금전 손해를 계산하기 어렵고, 기업 내부 자료가 없으면 원인과 과실을 입증하기도 힘듭니다. 개별 소송만 허용하면 피해자는 흩어지고 증거는 기업 안에 남아 사실상 책임을 묻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시장의 자율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피해를 일으킨 사업자가 충분한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안전과 품질에 투자한 기업이 오히려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효성 있는 피해구제는 반기업 정책이 아니라 책임 있는 기업이 신뢰받는 시장을 만드는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과 플랫폼 거래가 반복되는 시대에는 기존의 개별 구제만으로 충분한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민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계약과 선택도 실질적인 자유가 됩니다.
그렇다고 모든 우려를 ‘기업의 엄살’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기업과 법조계 일부는 소송이 제기됐다는 사실만으로 평판과 거래관계가 훼손될 수 있고, 방대한 자료 제출과 방어 비용이 중소·중견기업에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패소 가능성이 낮아도 합의를 압박하기 위한 기획소송이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집단소송과 행정제재, 형사처벌, 징벌적 손해배상이 한 사건에 중첩될 경우 전체 책임이 위법행위의 정도를 크게 넘어서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특히 시행 전 행위에 새 절차를 적용한다면 기업과 시민이 기존 법질서를 믿고 형성한 관계를 어디까지 보호할지 설명이 필요합니다.
이 우려가 집단소송 자체를 막는 이유가 돼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피해구제라는 선한 목적이 절차적 안전장치를 생략하는 이유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씨드는 ‘도입하느냐’보다 ‘어떻게 설계하느냐’를 묻습니다
좋은 제도는 피해자와 기업 가운데 한쪽을 무조건 믿는 제도가 아닙니다. 증거와 절차를 통해 책임을 분명히 하고, 근거 없는 소송은 일찍 걸러내며, 실제 피해 회복으로 성과를 판단하는 제도입니다.
- 법원이 피해의 공통성, 대표당사자의 적절성, 집단소송의 필요성을 초기 단계에서 엄격히 심사하도록 해야 합니다.
- 옵트아웃을 채택한다면 이해하기 쉬운 개별 통지와 충분한 제외 기간, 디지털 접근이 어려운 시민을 위한 별도 안내가 필요합니다.
- 증거개시는 사건과 관련된 범위로 한정하고 법원의 보호명령, 영업비밀 비공개, 자료 요구 비용의 합리적 배분을 함께 규정해야 합니다.
- 소급적용은 일률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 피해 발생 시점, 소멸시효, 기업의 예측 가능성과 피해자의 구제 가능성을 나누어 헌법적 검토를 거쳐야 합니다.
- 변호사 보수와 합의 내용을 법원이 심사하고, 실제 피해자에게 돌아간 배상액과 소송비용을 공개해 제도가 누구를 위해 작동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시민이 지켜볼 점
- 9월 정기국회가 여러 법안 가운데 어떤 안을 중심으로 심사하고 공개적인 공청회를 여는가
- 옵트아웃 대상자에게 통지와 제외 선택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가
- 증거개시의 범위와 영업비밀·개인정보 보호장치를 법률에 함께 담는가
- 소급적용 범위에 대해 충분한 헌법적 검토와 경과조치를 마련하는가
- 소송 허가, 변호사 보수, 합의와 배상금 분배 과정을 시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가
씨드의 관점
씨드는 집단소송법의 도입 필요성을 인정합니다. 시민 한 사람의 피해가 작다는 이유로 위법행위가 사실상 면책된다면 시장의 자유는 강자의 자유로 기울게 됩니다. 시민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통로는 시장 신뢰를 지키는 기반입니다.
그러나 강한 시민을 만들겠다는 이유로 국가와 법률가가 모든 분쟁을 대신 관리하는 구조도 경계해야 합니다. 옵트아웃, 증거개시와 소급적용은 피해구제를 강화하는 만큼 개인의 선택, 기업의 방어권과 법적 안정성에 큰 영향을 줍니다. 넓은 권한에는 엄격한 법원 심사와 투명한 통제가 따라야 합니다.
씨드가 원하는 것은 기업을 겁주기 위한 법도, 소비자에게 소송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시장도 아닙니다. 잘못한 기업은 피해를 회복하고, 책임 있는 기업은 예측 가능한 규칙 안에서 도전하며, 시민은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집단소송법은 그 세 조건을 함께 충족할 때 시민의 방패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