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국가책임

1,000조 원 나라살림, 낙관적 세수의 덫

정부는 2027년 총지출을 820조9천억 원으로 늘리고, 2030년에는 1,005조2천억 원에 이르는 중기 재정계획을 제시했습니다. 정부는 세입과 경제성장이 뒷받침해 국가채무비율을 49% 안팎에서 관리할 수 있다고 전망하지만, 반도체 경기와 세수 증가가 계획대로 이어질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유능한 국가는 많이 쓰는 국가가 아니라, 세입 전망이 빗나가도 국민에게 책임질 수 있도록 우선순위와 퇴로를 함께 설계하는 국가입니다.

확인된 사실

정부는 9월 1일 국무회의에서 2027년 예산안과 2026~203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의결했습니다. 2027년 총지출은 820조9천억 원으로 올해보다 12.8% 늘어나며, 계획대로라면 2030년 총지출은 1,005조2천억 원에 이릅니다. 정부는 이 예산안과 계획을 9월 3일 국회에 제출할 예정입니다.

정부가 제시한 2026~2030년 총지출의 연평균 증가율은 8.4%입니다. 같은 기간 총수입은 연평균 9.9%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인공지능과 전략산업, 청년·지역 지원, 복지 분야 등에 재정을 집중해 성장 기반을 강화한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입니다.

정부 전망에 따르면 2030년 국가채무는 약 1,734조1천억 원으로 늘어나지만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9% 안팎에서 관리됩니다. 국가재정법은 정부가 중기 수입·지출 전망과 산출 근거, 이전 계획과 달라진 이유, 계획의 이행 평가를 국회에 함께 제출하도록 규정합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부분

정부가 예상한 세수 증가가 실제로 실현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최근 세수 호조에 영향을 미친 반도체 경기가 2030년까지 이어질지도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경제 전망의 영역입니다.

재정 확대가 생산성과 민간투자를 높여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것이라는 설명 역시 정책 목표이지 검증된 결과는 아닙니다. 반대로 재정 확대가 반드시 실패하거나 국가채무 위기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근거도 현재로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현금성·반복성 사업을 경기 둔화기에 얼마나 조정할 수 있는지, 개별 사업에 종료 시점과 성과평가 기준이 마련되어 있는지는 국회에 제출될 세부 자료와 심사 과정을 통해 추가로 확인해야 합니다.

시민이 지켜볼 점

  • 반도체 경기와 세수가 예상보다 악화되는 경우를 가정한 하방 시나리오도 공개되는가
  • 이전 중기계획보다 지출 증가율이 크게 높아진 이유와 사업별 근거가 충분히 설명되는가
  • 미래 성장에 필요한 투자와 단기 현금 지원을 구분하고 반복 지출에 일몰조항과 재검토 절차를 두는가
  • 국가채무비율뿐 아니라 명목 채무와 이자 비용도 함께 공개하고 관리하는가
  • 국회가 지역사업 증액 경쟁을 넘어 비용 대비 효과와 성과지표를 검증하는가

씨드의 관점

확장재정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경제 전환기에는 연구개발, 인재 양성, 사회안전망처럼 국가가 책임 있게 투자해야 할 영역이 있습니다. 위기 앞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작은 국가는 제한된 국가가 아니라 무능한 국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한되고 유능한 국가’는 선의를 이유로 모든 사업을 확대하는 국가도 아닙니다.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고, 성과를 측정하며, 효과가 없으면 중단하고, 전망이 틀렸을 때 지출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민 역시 예산의 수혜자로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누가 부담하는지, 어떤 결과를 목표로 하는지, 전제가 빗나갔을 때 누가 책임지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1,000조 원이라는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이 나라살림의 근거와 결과를 끝까지 확인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