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드칼럼

대법관을 다시 고르라는 권력

대통령실의 대법관 재제청 요구, 여권의 대법원장 탄핵 언급, 대법관 증원이 한 방향으로 겹치고 있습니다. 각각의 제도적 논거를 살피되, 다수권력이 사법부의 인사와 규모를 자기 임기 안에 재편하려는 유혹에는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합니다.

이번 사태는 인사 갈등이 아니라 권력분립의 경고입니다

대통령실은 조희대 대법원장이 제청한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를 국회에 임명동의 요청하지 않고 재제청을 요구했습니다. 현행 헌법 아래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을 되돌려 보내 새 후보를 요구한 첫 사례로 평가됩니다.

여기에 여권 인사들의 대법원장 사퇴·탄핵 언급과 대법관 수를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는 법률이 겹쳤습니다. 개별 조치마다 명분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과 국회 다수당이 사법부 수장의 인사권, 임기, 법원의 규모를 동시에 압박한다면 시민은 전체 방향을 물어야 합니다.

씨드의 판단은 분명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절차 다툼이 아닙니다. 입법부와 행정부를 장악한 정치권력이 사법부까지 자기 뜻에 맞춰 재편할 수 있다는 위험한 신호입니다.

  • 다수는 법을 만들 수 있지만, 자기 편의대로 권력분립의 경계를 지울 수는 없습니다.

제청권은 통보권이 아니지만 임명권도 지명권은 아닙니다

헌법 제104조는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합니다. 세 기관에 권한을 나눈 이유는 어느 한쪽도 대법관 인선을 독점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대통령실은 제청과 임명이 별개의 헌법상 권한이며, 사전 협의 없이 후보를 통보하면 임명권이 형해화된다고 주장합니다. 제청 전에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의견을 조율해 온 관행도 있습니다. 대법원장이 충분한 소통 없이 서류를 전달했다면 그 방식은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헌법과 법률에는 사전 합의가 제청의 효력 요건이라고 적혀 있지 않습니다. 협의 관행이 깨졌다는 비판이 대통령에게 후보를 되돌려 보내는 명시적 권한을 자동으로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제청권을 단순 통보권으로 만들 수 없듯, 임명권을 사실상의 지명권으로 바꿔서도 안 됩니다.

필요한 것은 힘겨루기가 아니라 협의 절차의 공개적 규칙입니다. 후보 기준, 협의 시점, 이견 기록을 제도화해 누가 권한을 남용했는지 시민이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탄핵을 협상용 몽둥이로 쓰지 마십시오

헌법 제65조가 정한 탄핵 사유는 공직자가 직무집행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경우입니다. 탄핵은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이나 답변 태도를 벌주는 정치적 불신임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여권에서 대법원장 사퇴와 탄핵, 대법원 재구성까지 거론됐습니다. 명확한 위헌·위법 행위를 특정하고 증명하기보다 정치적 압박의 언어로 탄핵을 먼저 꺼낸다면 사법부 독립을 훼손합니다.

과거 야당 시절 반복된 탄핵 추진이 국정을 극단적 대치로 몰고 갔다는 비판도 정당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같은 수단을 더 거칠게 사용하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나쁜 관행의 집권화입니다.

탄핵은 최후 수단이어야 합니다. 위반 조항과 행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일반적인 조사·사법 절차로 해결할 수 없는 중대성이 입증될 때만 사용해야 합니다.

14명에서 26명, 숫자보다 ‘누가 언제 임명하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국회는 2026년 2월 대법관을 현재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는 법률을 통과시켰습니다. 사건 적체를 줄이고 전원합의체의 다양성을 높이겠다는 목적은 토론할 수 있습니다. 대법관 증원 자체가 언제나 부당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법원의 최고심 구성을 크게 바꾸는 법률이 특정 다수당 주도로 처리되고, 시행 시점과 기존 대법관의 임기를 계산하면 현 대통령이 임기 중 대다수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여기에 재제청 요구와 대법원장 탄핵 압박까지 겹치면 제도개혁은 사법부 장악이라는 의심을 자초합니다.

법원 규모 개편은 당장의 정치적 유불리와 분리해야 합니다. 충분한 숙의, 여야 합의, 객관적 사건 통계가 전제되어야 하며 증원 효과가 다음 정권 이후부터 나타나도록 시차를 두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12·3 계엄의 책임과 야당의 권력 남용은 분리해서 보아야 합니다

윤석열 정부 당시 민주당이 압도적 의석을 바탕으로 탄핵소추, 입법 강행, 예산 삭감을 반복하며 극단적 대치를 키웠다는 비판은 피할 이유가 없습니다. 의석수는 무제한 권한의 허가증이 아니며, 탄핵을 상시 정치수단으로 만든 책임도 따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 갈등이 비상계엄을 정당화하거나 야당이 계엄을 ‘일으키도록 했다’는 사실로 확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헌법재판소는 국회의 권한 행사가 계엄을 정당화할 정도의 국가비상사태를 만들지 않았고, 통상적 수단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계엄 선포의 법적·정치적 책임은 선포를 결정하고 집행한 권력에 있습니다.

이 구분은 양비론이 아니라 헌법의 일관성입니다. 과거 야당의 탄핵 공세가 계엄을 정당화하지 않듯, 위헌적 계엄의 기억도 오늘의 사법부 압박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씨드는 어느 편의 권력이든 같은 잣대로 제한해야 한다고 봅니다.

  • 한 권력의 잘못은 다른 권력의 월권을 허가하지 않습니다.

다수결은 헌법의 주인이 아닙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선거에서 이긴 세력이 모든 기관을 지배하는 체제가 아닙니다. 다수결이 정당성을 얻는 이유는 기본권, 법치, 권력분립이라는 경계 안에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행정부의 임명권, 국회의 동의권과 탄핵권,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서로를 지우기 위한 무기가 아닙니다. 각 권한이 다른 권한을 완전히 굴복시키는 순간 견제와 균형은 사라지고, 선거로 선택된 권력이 제약 없는 지배로 기울기 시작합니다.

국민주권을 대통령 주권이나 다수당 주권으로 바꾸어 읽어서는 안 됩니다. 민주적 선거로 집권했다는 사실은 독재적 행태의 면허가 아닙니다. 재제청 요구, 탄핵 위협, 대법관 증원을 따로 떼어 놓으면 각각 절차와 개혁의 언어로 포장할 수 있지만, 한 줄로 이어 놓으면 사법부를 다수권력의 의지 아래 두려는 위험한 경로가 보입니다.

지금 독재가 완성됐다고 말하는 것은 성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권력이 독재화의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라고 비판하기에는 충분합니다. 경고등을 무시한 뒤에야 제도를 지키자고 외치면 늦습니다.

씨드의 요구: 권력의 선의가 아니라 규칙으로 막아야 합니다

첫째, 대법관 제청·임명 협의의 시점과 절차, 후보 평가 기준을 공개 가능한 범위에서 제도화해야 합니다. 둘째, 탄핵을 거론할 때는 위반한 헌법·법률 조항과 구체적 행위를 먼저 제시하도록 정치적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셋째, 대법관 정원처럼 사법부 구성을 장기간 바꾸는 법률은 초당적 합의와 독립적 영향평가를 거치고, 현 권력의 인사 이익을 줄이는 시행 시차를 두어야 합니다. 넷째, 시민사회와 언론은 판결의 내용에 대한 비판과 법관 개인을 굴복시키려는 압박을 구분해야 합니다.

씨드는 조희대 대법원장 개인을 무조건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 설명하고 책임져야 합니다. 다만 설명 책임을 요구하는 것과 사퇴·탄핵·재구성의 위협으로 복종을 요구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정권은 바뀌지만 선례는 남습니다. 오늘 내 편을 위해 넓힌 권한은 내일 상대편의 손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지금 멈춰야 합니다. 다수당은 사법부의 주인이 아니며 대통령은 대법관을 마음대로 고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통령도, 다수당도, 대법원장도 헌법 아래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