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드칼럼
평등을 외치며 특혜의 사다리를 오른 용혜인
평등과 약자 보호를 말해 온 용혜인 의원이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두 차례 위성정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온 뒤 장관이 돼도 의원직을 유지하겠다는 선택, 보완수사권 폐지 과정에서 드러난 피해자 보호의 공백은 그가 말해 온 평등과 책임을 되묻게 한다.
정치인은 말과 행동으로 심판받는다
정치인은 말과 행동으로 심판받는다. 특히 평등과 공정을 입에 달고 살아온 정치인이라면 그 기준은 더욱 엄격해야 한다. 남들에게 특권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했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특혜부터 거부해야 한다. 약자의 권리를 외쳤다면 권력의 문이 열리는 순간에도 약자의 목소리 곁에 서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용혜인의 행보는 정반대다. 평등을 말했지만 특혜의 사다리를 탔고, 소수자를 말했지만 거대 정당이 만들어 놓은 위성정당의 안전한 비례대표 명부를 두 번이나 이용했다. 피해자 보호를 외쳤지만 정작 성폭력 피해자와 법적 취약계층이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를 막아 달라고 호소할 때는 그들과 다른 편에 섰다.
이 정도면 단순한 정책적 견해 차이가 아니다. 정치인의 말과 삶이 서로 충돌하는 문제다.
- 평등은 남에게만 희생을 요구하는 구호가 아니다.
- 자신의 차례가 왔을 때 예외를 주장하지 않는 태도다.
두 번의 위성정당, 그리고 두 개의 자리
용혜인은 2020년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고, 2024년에는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로 재선됐다. 두 번 모두 거대 정당이 만든 선거연합정당의 당선권에 들어갔다가 당선 후 자신의 정당으로 돌아가는 방식이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본래 작은 정당과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를 국회에 진입시키기 위한 제도였지만, 용혜인의 정치적 성공은 그 제도의 정신보다 거대 정당과의 거래에 더 크게 기대고 있었다.
그런 용혜인이 장관이 되더라도 비례대표 의원직을 내려놓지 않겠다고 한다. 현행법상 국회의원과 국무위원의 겸직은 가능하다. 그러나 비례대표 의원은 사퇴해도 후순위 후보가 승계할 수 있기 때문에 입각할 때 의원직을 내려놓는 것이 관례였다.
용혜인은 자신이 사퇴하면 기본소득당이 원외정당이 된다는 이유를 들며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그것은 국민이 이해해야 할 사정이 아니라 용혜인과 기본소득당이 감당해야 할 정치적 책임이다. 장관직을 받아들이면서 의원직도 놓지 않겠다는 것은 공직에 대한 헌신이 아니라 정치적 보험을 움켜쥐겠다는 모습으로 비칠 뿐이다.
2030에게만 경쟁을 말할 것인가
평범한 2030 청년들은 하나의 일자리와 한 번의 기회를 얻기 위해 끝없는 경쟁을 치른다. 시험에 떨어지면 다시 준비하고, 취업에 실패하면 자신의 부족함부터 돌아본다. 누구도 그들의 사정을 이유로 자리를 두 개씩 보장해 주지 않는다.
그런데 평등과 공정을 외쳐온 정치인은 장관직과 국회의원직을 동시에 쥐고서 소수정당의 어려움을 이해해 달라고 한다. 대체 누구의 어려움은 이해받고 누구의 어려움은 경쟁에서 탈락해야 하는가. 자신이 누리는 예외는 정치적 불가피성이고, 다른 사람이 누리는 예외만 특권인가.
청년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젊은 장관의 등장을 싫어해서가 아니다. 기회와 책임의 규칙이 권력에 가까운 사람에게만 다르게 적용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절규보다 진영의 구호가 먼저였나
더 심각한 문제는 성폭력 피해자 보호에 관한 태도다. 용혜인은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찬성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제도개혁의 논리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형사사법제도는 정치적 구호를 실현하기 위한 실험장이 아니다.
경찰의 초동수사가 부실했을 때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고, 묻힐 뻔한 성범죄와 추가 피해를 밝혀내는 장치가 실제로 작동해 왔다면 그것을 없애기 전에 피해자를 보호할 확실한 대안을 먼저 마련했어야 한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조차 용혜인을 성평등가족부 장관으로서 자격 미달이라고 비판했다. 성폭력 피해자와 법적 취약계층이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를 막아 달라고 호소해 왔는데, 그런 폐지에 앞장선 사람이 어떻게 약자의 안전권을 보장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보수 진영만의 정치공세가 아니다. 용혜인이 대변한다고 자처해 온 여성계 내부에서 제기된 근본적인 자격 심사다.
- 여성을 위한 정치는 여성이라는 말을 크게 외치는 정치가 아니다.
- 진영의 구호와 피해자의 절규가 충돌할 때 누구의 손을 잡느냐가 기준이다.
상징성이 실력과 경륜을 대신할 수 없다
용혜인은 재선 국회의원이지만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서 대규모 행정조직을 직접 운영한 경험이 없다. 국회 성평등가족위원회 소관 법률 가운데 대표발의 법안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동발의 법안이 존재하므로 이를 두고 관련 활동이 전혀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성평등가족부 장관이라는 막중한 자리를 맡길 만큼 전문성과 행정능력이 검증됐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청년에게 기회를 주는 것과 검증되지 않은 정치인에게 장관직을 보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젊다는 이유로 검증을 면제해 주는 것도 차별이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격 검증을 멈추는 것도 평등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청년과 여성을 정치적 장식물로 취급하는 일이다.
대통령실은 용혜인을 세대 간, 성별 간 갈등을 넘어 모두의 성평등으로 나아갈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갈등을 조정해야 할 자리에 젠더 갈등의 한쪽에서 가장 선명한 목소리를 내온 정치인을 앉히는 것이 과연 통합인가.
공직은 정치적 보상이 아니다
공직은 전리품이 아니다. 장관직은 정권에 협력한 소수정당에 나눠주는 정치적 보상도 아니다. 더욱이 성평등가족부는 피해자 보호, 가족정책, 청소년정책, 성폭력·가정폭력·스토킹 대응을 책임지는 부처다. 말 잘하고 구호가 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맡길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존엄을 지킬 판단력, 진영을 넘어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을 용기, 복잡한 행정조직을 움직일 경륜이 필요하다. 용혜인이 정말 평등을 믿는다면 먼저 자신에게 적용되는 특혜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정말 책임정치를 말하고 싶다면 장관직과 의원직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정말 여성 피해자의 안전을 책임지겠다면 보완수사권 폐지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호소를 어떻게 반영했는지 분명히 답해야 한다.
먼저 자신이 외쳐 온 말 앞에 답하라
공정은 자신의 차례가 왔을 때 예외를 주장하지 않는 태도다. 책임은 권력을 하나라도 더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에 따르는 손해까지 감당하는 것이다.
용혜인은 지금 장관 자리를 받을 때가 아니다. 자신이 평생 외쳐 온 말 앞에 먼저 답할 때다. 그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대통령은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
평등을 외치며 특혜의 사다리를 오른 정치인에게 성평등을 맡기는 것은 모순을 넘어 국민에 대한 모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