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그들이 대한민국 시민사회를 대표하는가
이재명 대통령이 진보 성향 시민단체 19곳과 210분간 대화했다. 특정 진영을 시민사회 전체처럼 호명하고 위원회·사업·예산으로 국가 안에 편입할 때 시민사회의 대표성과 독립성이 어떻게 훼손될 수 있는지 묻는다.
210분의 경청, 그러나 누구를 들었는가
이재명 대통령은 9월 4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과 3시간 30분, 정확히 210분 동안 대화했다. 대통령이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오래 듣는 일 자체는 환영할 수 있다. 그러나 경청의 길이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과연 대한민국 시민사회를 대표했는가.
간담회에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한국진보연대를 비롯해 민변, 참여연대, 전농,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전국여성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민족문제연구소, 촛불행동, 정의기억연대 등이 참석했다. 공개된 참석자는 19개 단체 관계자였다. 전체 구성은 진보 시민사회 진영에 현저히 기울어져 있었다.
시민단체는 특정 가치와 정책을 주장할 자유가 있다. 문제는 정부가 특정 진영의 단체들을 ‘시민사회’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 국정 파트너로 호명하는 순간이다. 그때 결사의 자유로 존재하던 단체들은 시민 전체의 대표처럼 보이기 시작하고, 초청받지 못한 수많은 시민과 조직은 공론장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 오래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 널리 들었다는 사실이 되지는 않는다.
지지율이 떨어지자 다시 집토끼를 찾은 것인가
한국갤럽의 9월 첫째 주 조사에서 대통령 직무 긍정 평가는 40%, 부정 평가는 51%였다. 이런 시점에 진보 시민사회 핵심 인사들을 한자리에 모은 장면이 지지층 결집을 위한 ‘좌측 깜빡이’로 읽히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다만 그 만남이 실제로 지지율 반전을 목적으로 기획됐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확인되는 사실과 정치적 인상은 구분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에서 구성과 연출도 메시지다. 대통령은 참석 단체들이 꿈꾸는 세상과 자신이 만들고 싶은 세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취지로 말했다. 서로 비슷한 목표를 가진 세력이 만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대통령은 한 진영의 지도자이기 전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다.
보수 시민사회가 위축됐고 초청할 만한 전국 조직이 많지 않다는 현실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익숙한 단체만 불러 대표성을 완성했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비조직 시민과 지역 공동체, 종교·복지·소비자·납세자·시장경제 단체까지 대화의 통로를 새로 만드는 일이다. 한쪽의 조직력이 약하다는 이유가 다른 한쪽의 독점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정부가 선택한 시민사회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대표성은 단체 이름의 크기나 오랜 활동 경력에서 자동으로 나오지 않는다. 회원은 몇 명인지, 지도부는 어떻게 선출되는지, 재정은 어디에서 오는지, 내부의 반대 의견을 어떻게 다루는지, 일반 시민에게 어떤 책임을 지는지를 함께 따져야 한다. 시민단체의 도덕적 권위는 국가의 인증장이 아니라 투명성과 자율성에서 생긴다.
더구나 대통령 직속 또는 정부 주도의 위원회, 지원사업, 숙의 프로그램에 같은 인적·조직적 네트워크가 반복해 들어가면 초청은 곧 자원이 된다. 발언권은 정책 접근권이 되고, 정책 접근권은 사업과 예산, 다시 대표성으로 이어진다. 정부가 파트너를 고르고 그 파트너의 대표성을 다시 키우는 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것이 씨앗의 소리가 우려해 온 ‘시민사회의 국가화’다. 국가는 시민사회를 강제로 해산하지 않아도 된다. 지원하고 초청하고 위원으로 임명하고 정책 수행을 맡기는 방식으로 비판자를 협력자로, 협력자를 행정의 일부로 바꿀 수 있다. 선의의 협치도 경계가 사라지면 포획이 된다.
- 국가가 시민사회를 억압하는 것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 국가가 시민사회를 선택하고 길들이는 것도 위험하다.
시민사회가 행정 안으로 들어갔을 때 벌어진 일
진보 시민사회 내부의 연구도 이 위험을 외면하지 않았다. 유재명은 2025년 『시민사회와 NGO』에 실린 서울시 시민사회정책 연구에서 2011년 이후 협치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행정으로 이동하고, 중간지원조직과 위원회가 늘어난 궤적을 분석했다. 시민의 의제가 정책으로 들어간 성과와 함께 행정 중심 구조, 정부 재원 의존, 시민사회 고유의 독립성 약화라는 긴장을 지적한다.
이 연구가 협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협치가 지속되려면 시민사회가 정부 사업의 하청망이 되지 않고 독자적 의제와 조직 기반을 유지해야 한다는 경고에 가깝다. 사람과 자원이 행정 내부로 계속 이동하고 외부의 운동 기반이 마르면, 회의실 안의 참여는 늘어도 회의실 밖의 감시자는 줄어든다.
지금 중앙정부가 시민정책참여, 숙의공론화, 민주시민교육과 시민사회 지원을 하나의 체계로 연결하려는 상황에서 이 경험은 더욱 중요하다. 국가시민참여위원회와 각종 공론화 기구가 같은 네트워크의 활동가와 전문가로 채워진다면, 시민참여라는 이름 아래 정치권력과 시민사회 권력이 한 덩어리로 굳어질 수 있다.
31조 원으로 확대된 국가와 민간단체의 연결
재정의 규모도 작지 않다. 정부가 2022년 말 공개한 전수점검 자료에 따르면, 비영리민간단체뿐 아니라 사단·재단법인과 사회복지시설 등을 넓게 포함한 민간단체 국고보조금은 2016년 3조5600억 원에서 2022년 5조4500억 원으로 53.1% 늘었다. 같은 기간 집행 사업은 약 2만2000개에서 2만7000개로 증가했고, 7년간 지원액은 31조4000억 원이었다.
이 수치를 곧바로 ‘진보 시민단체에 31조 원을 줬다’고 읽어서는 안 된다. 공개 범주는 복지시설과 여러 법인을 포함하며, 특정 이념 진영에 대한 지원액을 따로 보여주지 않는다. 데이터가 증명하는 것은 국가와 광범위한 민간 조직 사이의 재정적 연결이 크게 확대됐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엄격한 질문이 필요하다. 누가 지원 대상을 정하는가, 정부 비판 단체도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가, 지원 종료 뒤에도 조직이 자립할 수 있는가, 사업 평가자가 다시 수혜자가 되지는 않는가. 보조금이 활동을 돕는 도구를 넘어 대표성을 사고 순응을 보상하는 장치가 되면 시민사회는 국가의 바깥이 아니라 예산의 주변부가 된다.
국민 제안 140건을 받고도 정부 제안이 남았다
참여의 문을 넓혔다고 시민의 영향력이 자동으로 커지는 것도 아니다. 열린정부파트너십 독립보고기구가 검토한 대한민국 제5차 국가실행계획 수립 과정에서는 2020년 국민 제안 공모로 140건이 접수됐다. 그러나 최종 공약의 대부분은 정부기관이 제안한 것이었고, 시민사회 참여 역시 기존 열린정부위원회 구성원 중심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제안 건수와 회의 시간은 참여의 양을 보여줄 뿐이다. 누가 의제를 추리고, 어떤 제안이 최종 문서에 들어가며, 탈락한 의견에 누가 답하는지가 실질적 권력을 보여준다. 210분 동안 많은 말을 들었더라도 참석자와 의제가 한쪽으로 기울고 정책 선택권이 대통령과 행정부에 남아 있다면 그것은 숙의라기보다 자문에 가깝다.
시민소통의 성과는 대통령이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는지가 아니라, 반대자를 포함해 누구에게 문을 열었는지, 시민의 말이 어떤 절차로 채택되거나 거절됐는지, 그 기록을 국민이 검증할 수 있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 참여의 입구가 넓어져도
- 결정의 문이 닫혀 있으면 시민의 권력은 커지지 않는다.
진보 시민사회 내부에서도 나온 ‘시민 없는 시민운동’
이 비판은 보수 진영에서 갑자기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주성수는 2008년 한국 시민운동의 위기를 다루며 전문 활동가 중심의 대변형 운동이 회원과 시민의 직접 참여를 충분히 만들지 못한 문제를 분석했다. 이른바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자기비판이다. 시민단체가 시민을 대신해 말할수록 정작 시민은 후원자나 청중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경고였다.
임현진과 공석기도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의 시민사회 연구에서 한국 시민사회가 정치적 진영화와 제도화, 재정 취약성 속에서 시민의 신뢰와 참여 기반을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해 왔다. 정부와 시장을 감시해야 할 조직이 정당정치의 인력 공급처나 공공사업의 수행기관으로만 인식되면, 시민사회 전체의 정당성이 함께 약해진다.
실제로 시민사회의 주요 스피커들이 정당으로 들어가 국회의원이 되고, 각종 재단과 공익조직, 위원회로 이동해 온 흐름은 오래됐다. 개인의 정치 참여가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동이 한 방향으로 누적되고 그 뒤를 같은 네트워크가 채운다면 시민운동과 정당, 행정 사이의 견제선이 흐려진다. 민주주의의 이름은 남아도 시민의 자리는 사라질 수 있다.
통합의 목소리는 떠나고 같은 생각만 남았다
공교롭게도 간담회 전날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은 9월 9일 자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위원회는 임기 종료라고 설명했고, 이 위원장은 자신의 철학과 다른 부분이 있으며 헌법에 충성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냈다. 그가 보완수사권 문제 등에서 정부에 쓴소리를 해왔다는 점 때문에, 사임과 다음 날의 편중된 간담회가 ‘통합의 끈을 놓는 장면’처럼 겹쳐 보인다.
그러나 두 사건 사이의 인과관계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이 위원장이 해당 간담회 때문에 떠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 장면이 만들어 낼 정치적 상징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다른 목소리를 내던 통합기구 수장은 떠나고, 대통령과 지향이 비슷한 단체들이 ‘시민사회 대표’로 모였다.
통합은 반대편 인사를 장식품처럼 한두 명 앉히는 일도, 모든 주장을 절충하는 일도 아니다. 권력자가 듣기 불편한 조직과 비조직 시민에게도 같은 접근권을 보장하고, 그 반대가 정책 기록에 남도록 하는 일이다. 그런 절차 없이 ‘모두의 대통령’을 말하면 통합은 구호가 된다.
시민사회는 대통령의 개혁 동맹이 아니다
시민사회는 대통령이 개혁을 추진할 때 동원하는 우군 명단이 아니다. 정권이 잘할 때 협력하고 잘못할 때는 누구보다 먼저 비판해야 하는 독립된 공간이다. 보수든 진보든 정부 지원을 받는 순간에도 그 거리를 지켜야 한다.
대통령이 정말 시민사회와 소통하려면 다음 만남은 달라야 한다. 참석 단체의 선정 기준과 회원·재정 정보를 공개하고, 이념과 조직 규모가 다른 단체 및 무소속 시민을 공개 추첨과 추천으로 함께 구성해야 한다. 의제는 정부와 초청 단체가 독점하지 말고 사전 공개 제안으로 정해야 하며, 채택·보류·거절한 의견과 이유를 남겨야 한다. 정부 위원과 보조금 수혜 조직의 이해충돌도 공개해야 한다.
진보 시민사회에도 선택이 남아 있다. 권력과 가까워진 것을 운동의 승리로 착각할 것인가, 아니면 국가의 지원과 초청을 받더라도 비판자의 자리를 지킬 것인가. 독재 타도와 민주주의를 외쳤던 운동의 결론이 한 줌의 정치권력과 한 몸이 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승리가 아니라 자기부정이다.
210분의 대화가 경청이 되려면 대통령과 같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만의 아무 말 잔치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시민사회는 국가 안으로 들어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거리를 두고 국민이 권력을 감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살아 있다.
- 모두의 대통령이라면
- 자기편 시민단체가 아니라 불편한 시민부터 만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