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드칼럼
보수가 잃어버린 것은 정권이 아니라 시민의 언어이다
보수의 위기는 정권 상실보다 시민의 삶을 설명할 언어를 잃은 데 있습니다. 자유·공정·법치·시장을 시민의 언어로 다시 번역하고, 새로운 시민사회의 진지전을 시작할 길을 제안합니다.
보수의 위기를 정권의 문제로만 볼 수 없습니다
한국 보수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다음 선거에서 누가 이길 것인지, 어떤 인물을 세워 정권을 되찾을 것인지부터 묻습니다. 그러나 더 깊은 곳에서 잃어버린 것은 정권이 아니라 시민의 삶을 설명하고 시민과 관계를 맺는 언어입니다.
정권은 선거에서 다시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언어와 신뢰는 한 번 잃으면 오랜 시간에 걸쳐 다시 쌓아야 합니다. 자유와 책임, 법치와 시장을 말하면서도 그것이 시민의 일상에서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지 못한다면 정권을 잡아도 사회를 이끌 수 없습니다.
보수가 다시 시작하려면 ‘어떻게 이길 것인가’보다 ‘시민과 어떤 언어로 만날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 정권은 다시 얻을 수 있지만,
- 시민의 언어와 신뢰는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됩니다.
보수는 국가를 말했지만 시민의 삶을 충분히 말하지 못했습니다
한국 보수는 산업화, 안보, 성장, 법치와 시장경제라는 중요한 성취와 가치를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그 가치가 평범한 시민의 삶에서 무엇을 지키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자유를 추상적인 이념이나 체제 경쟁의 말로만 다루고, 시장을 기업의 자유나 성장률의 언어로만 설명했습니다. 법치는 상대 진영을 처벌하는 구호처럼 들렸고, 공정은 우리 편이 불이익을 받을 때만 등장한다는 불신도 키웠습니다.
가치가 시민의 생활 언어로 번역되지 않으면 시민은 그 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느끼기 어렵습니다. 결국 보수의 말은 시민을 설득하는 언어보다 지지층의 결속을 확인하는 암호에 가까워졌습니다.
시민사회의 언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만으로 사회를 이끌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선거와 국가권력뿐 아니라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상식,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말, 좋은 삶에 대한 공통의 감각입니다. 그는 이 긴 형성 과정을 ‘진지전’의 관점에서 설명했습니다.
한국의 진보 시민사회는 환경, 인권, 여성, 노동, 복지, 평화, 돌봄과 공동체 같은 의제를 오랫동안 조사하고 말하고 조직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민이 사회문제를 이해하는 언어와 공익의 기준을 축적했습니다.
물론 이후 일부 시민운동이 정당정치나 국가사업에 가까워지고 권력화되었다는 비판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지적하는 것만으로 보수 시민사회의 부재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상대의 진지가 잘못됐다고 비판하는 일과 시민이 설 수 있는 새로운 진지를 만드는 일은 다릅니다.
-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선거만이 아닙니다.
- 시민의 상식과 언어가 사회의 방향을 만듭니다.
보수는 시민사회 밖에 성을 쌓았습니다
보수는 진보 시민사회의 편향을 비판했지만 대안적인 환경운동, 인권운동, 청년운동, 돌봄과 지역공동체 운동을 충분히 만들지 못했습니다. 시민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조사하고 해결하는 조직보다 선거, 정권, 광장과 유명 인물에 더 많은 힘을 쏟았습니다.
진보가 생활 곳곳에 진지를 만들 때 보수는 국가라는 성을 지키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정권을 얻었지만 시민사회 안에서 문제를 해석하고 설명하는 언어는 잃었습니다.
시민사회가 한쪽 정치 진영의 독점물이 되는 것은 건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독점을 깨는 방법은 시민사회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더 개방적이고 자립적이며 사실에 충실한 시민사회를 새로 만드는 것입니다.
시민의 언어는 진보의 언어도, 보수의 언어도 아닙니다
시민의 언어는 또 하나의 진영 선전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와 정당, 전문가의 말을 시민의 삶과 선택의 문제로 번역해 시민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돕는 언어여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는 국가가 시민의 생각과 선택, 재산과 삶을 함부로 결정하지 못하게 하는 질서입니다. 법치주의는 상대를 처벌하는 도구가 아니라 권력자까지 법 아래 두어 시민을 보호하는 원칙입니다. 시장경제는 대기업의 특권이 아니라 시민이 도전하고 투자하며 일자리와 선택을 만드는 공간입니다.
작은 정부는 무능한 정부가 아니라 핵심 기능을 유능하게 수행하면서 시민, 기업, 지역공동체가 스스로 일할 공간을 남기는 정부입니다. 세금은 국가의 돈이 아니라 시민이 맡긴 위임재산이며, 공익은 국가나 시민단체가 독점하는 명분이 아니라 시민이 질문하고 검증하며 함께 만드는 사회적 신탁입니다.
성명보다 설명이 먼저여야 합니다
시민의 언어는 선전을 부드럽게 바꾸는 기술이 아닙니다. 판단에 필요한 근거를 시민에게 돌려주는 태도입니다. 정보가 넘치고 확증편향이 강해질수록 사실을 먼저 확인하고, 확인된 것과 확인되지 않은 것을 나누며, 서로 다른 주장과 비용을 함께 보여줘야 합니다.
어떤 정책을 평가할 때도 누가 제안했는지만 보지 말고 시민의 자유와 재산, 공동체의 책임, 미래세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잘한 일은 상대 진영의 것이라도 인정하고, 우리 편의 오류도 같은 기준으로 비판할 수 있어야 신뢰가 생깁니다.
씨드가 시민브리핑을 만들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성명서는 분노를 조직할 수 있지만 브리핑은 이해와 참여를 조직합니다. 시민에게 결론을 강요하기보다 사실과 맥락, 선택지를 제공해 시민이 자기 언어로 판단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 성명서는 분노를 조직할 수 있지만,
- 브리핑은 이해와 참여를 조직합니다.
시민의 언어는 시민의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언어가 시민의 질문을 만들지 못하고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다시 지식인의 담론에 머뭅니다. 시민은 문제를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제안하고 실험하고 기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민제안은 생활 속 문제를 발견해 정책과 시장, 공동체가 움직일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시민브리핑은 복잡한 현안을 사실과 맥락 중심으로 정리해 판단의 기반을 나누는 일입니다. 시민실험은 작은 지역과 조직에서 대안을 직접 시험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는 일입니다.
그 과정의 기록은 다음 시민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시민자산이 됩니다. 이렇게 언어와 지식, 실천과 기록이 연결될 때 시민사회는 특정 정권이나 보조금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시작해야 할 새로운 진지전
그람시를 배우는 이유가 또 다른 문화전쟁을 벌이거나 진보의 조직 방식을 그대로 복제하기 위해서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시작해야 할 진지전은 시민의 언어와 판단 능력, 자발적 협력을 쌓는 일이어야 합니다.
자유와 공정, 책임과 법치가 시민의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 꾸준히 설명해야 합니다. 책과 칼럼, 대화와 브리핑, 지역활동과 작은 프로젝트를 통해 시민이 직접 질문하고 참여할 통로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일은 선거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빠른 승리를 약속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시민의 언어를 가진 세력은 정권을 잃어도 사회 안에 남고, 다음 세대가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신뢰와 자산을 남깁니다.
- 새로운 진지전은 진영의 말을 더 크게 외치는 일이 아니라,
- 시민이 스스로 판단할 언어와 자리를 오래 쌓는 일입니다.
보수의 회복은 시민의 회복에서 시작됩니다
보수의 실패를 진보 시민사회의 성공이나 편향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됩니다. 상대의 실패가 우리를 옳게 만들지 않으며, 상대의 진지를 무너뜨린다고 우리 자리가 저절로 생기지도 않습니다.
시민을 표와 동원 인원으로 보지 않고 공공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주체로 만나야 합니다. 정권을 되찾는 일보다 시민을 되찾는 일이 먼저입니다.
정권은 임기가 끝나면 바뀔 수 있지만 시민사회의 언어와 신뢰는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됩니다. 시민의 언어를 가진 세력은 정권을 잃어도 사회에 남습니다. 그러나 시민의 언어를 잃어버린 세력은 정권을 잡아도 사회를 이끌지 못합니다.
보수가 잃어버린 것은 정권이 아니라 시민의 언어입니다. 그리고 보수의 진정한 회복은 그 언어를 시민에게 돌려주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