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사회 안의 시장, 국가 밖의 사회

폴라니는 시장이 사회를 삼키는 위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시장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한다는 국가가 오히려 사회를 흡수할 수 있습니다. 기본사회·지역화폐·정책금융·공공주택·사회연대경제를 통해 나타나는 국가 중심 설계의 징후를 씨드의 시각으로 살펴봅니다.

폴라니는 무엇을 보았는가

칼 폴라니가 남긴 가장 중요한 말은 어렵지 않습니다. 시장이 사람 위에 올라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회사가 노동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비용으로만 보고, 땅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이 아니라 돈을 불리는 상품으로만 본다면 사람과 공동체는 시장의 부속물이 됩니다.

폴라니는 노동·토지·화폐를 ‘허구적 상품’이라고 불렀습니다. 노동은 인간의 삶이고, 토지는 자연이며, 화폐는 국가와 사회가 만든 약속입니다. 공장에서 팔기 위해 생산한 물건과는 다릅니다. 그런데 시장은 이 세 가지까지 일반 상품처럼 취급하려 합니다.

폴라니는 시장 자체를 없애자고 말한 사람이 아닙니다. 시장은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주고 기업이 무엇을 생산할지 판단하게 합니다. 그가 비판한 것은 시장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시장사회’였습니다. 이 지점에서 폴라니의 경고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 시장은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 사람이 시장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폴라니가 충분히 묻지 않은 질문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시장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한다면 누가 그 일을 맡아야 합니까. 국가인지, 노동조합인지, 협동조합인지, 시민단체인지, 전문가위원회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폴라니는 시장이 지나치게 팽창하면 사회가 노동법과 복지, 환경보호와 금융규제를 통해 자신을 보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를 ‘이중운동’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보호는 대부분 국가의 법률과 예산, 규제와 행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시장을 사회 안에 두자’는 말이 ‘국가가 시장과 사회를 관리하자’는 말로 바뀌기 쉬운 이유입니다.

모든 사회적 보호가 자유를 키우는 것도 아닙니다. 복지는 사람을 보호하지만 국가 의존을 키울 수 있습니다. 노동 보호는 약자의 권리를 지키지만 거대 노조의 기득권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 보호는 연대를 만들지만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집단주의로 흐를 수도 있습니다. 누구의 자유가 커지고, 누구에게 권력이 모이며, 누가 비용을 내는지를 함께 물어야 합니다.

국가는 사회가 아닙니다

국가와 사회는 다릅니다. 국가는 세금을 걷고 법을 만들며 명령하고 처벌할 수 있습니다. 반면 사회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나고 협력하며 책임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가족과 지역공동체, 종교단체, 시민단체, 기업과 노동조합 등 수많은 관계가 사회를 이룹니다.

국가는 사회를 보호할 수 있지만 사회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정부가 지원한 시민단체가 시민사회 전체를 대표할 수 없고, 거대 노동조합이 모든 노동자를 대표하는 것도 아닙니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이라는 이름만 붙였다고 저절로 공익적인 조직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시장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품을 사지 않거나 다른 회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가 법률과 세금으로 만든 제도에서는 빠져나가기 어렵습니다. 잘못된 정부 정책은 세금과 국가채무로 계속 유지될 수도 있습니다. 시장의 횡포도 위험하지만 법률·예산·과세·수사·인허가 권한을 가진 국가의 횡포는 더 위험합니다.

  • 시장은 사회 안에 있어야 합니다.
  • 그러나 사회는 국가 밖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기본사회’를 국가가 설계합니다

이재명 정부는 ‘기본사회’를 중요한 국정목표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국민의 소득과 주거, 의료, 돌봄, 교통 등 기본생활을 국가가 더 두텁게 보장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누구나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누려야 한다는 말에는 쉽게 반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좋은 이름보다 실제 구조를 봐야 합니다.

정부는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는 기본사회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16개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지방자치단체 대표들이 참여합니다. 이 위원회는 복지사업 몇 가지를 조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본사회의 국가비전을 정하고, 법과 제도를 고치며, 국민에게 그 가치를 알리는 일까지 맡습니다.

대통령 직속기구가 ‘기본적인 삶’의 의미와 방향을 정하고 관련 법률과 예산을 묶으며 국민의 인식까지 이끌려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무엇이 좋은 삶인지, 국민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제공할지를 국가가 결정하는 구조가 되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시민이 넘어지지 않도록 안전망을 만들어야 하지만 시민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까지 설계해서는 안 됩니다.

지역을 살린다는 이름으로 소비까지 설계합니다

정부는 2026년부터 인구감소지역 10개 군 주민에게 매달 15만 원의 농어촌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현금이 아니라 해당 지역에서 주로 사용할 수 있는 지역사랑상품권으로 줍니다. 인구가 줄고 상점이 문을 닫는 농촌에서 소비를 늘리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돈을 주면서 어디에서 어떻게 쓸지까지 정한다는 점을 봐야 합니다. 시민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소득이라기보다 국가와 지방정부가 정해 놓은 소비 경로 안에서 사용하는 돈에 가깝습니다. 여기에 사회적기업·협동조합·마을기업 같은 ‘사회연대경제’ 조직을 연결하는 계획도 포함돼 있습니다.

잘 운영되면 지역 안에서 돈이 돌고 주민공동체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단체와 사업자만 커지고, 주민의 필요보다 행정기관이 정한 사업에 돈이 몰릴 수도 있습니다. 시민이 스스로 만든 공동체와 정부가 예산으로 만든 공동체는 같지 않습니다.

국가가 산업자금의 물길을 정합니다

이재명 정부는 국민성장펀드를 처음 150조 원으로 설계한 뒤 200조 원으로 확대했습니다. 정부 보증 자금과 민간자금을 모아 AI·반도체·바이오·방산·에너지 같은 산업에 투자하고, 정부가 직접 기업 지분을 사는 투자도 늘리는 정책입니다.

국제적인 기술경쟁 속에서 국가가 전략산업을 돕는 일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0조 원의 자금 방향을 국가가 정한다는 것은 어떤 산업과 기업을 키울지 정부가 선택한다는 뜻입니다. 정치적으로 필요한 사업이나 정부와 가까운 기업에 돈이 흘러갈 수 있고, 실패해도 관료와 정치인이 자신의 돈으로 갚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 자금은 민간의 도전을 돕는 마중물이 되어야지 기업을 정부 정책에 줄 세우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가 금융의 물길을 지나치게 많이 정하면 기업은 소비자보다 정부를 바라보게 되고, 좋은 상품을 만드는 능력보다 정부사업을 따내는 능력이 중요해집니다.

토지의 주인·개발자·감독자가 모두 국가라면

정부는 수도권 공공택지를 민간에 매각하지 않고 LH가 직접 주택을 지어 공급하는 방식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공공기관이 토지를 보유하고, 개발계획을 세우고, 주택을 공급하며, 임대와 분양에도 관여하는 구조입니다.

집값이 오르고 민간이 서민주택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할 때 공공주택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LH가 토지를 가진 주인인 동시에 개발자와 공급자가 되고, 정부가 부동산 시장의 감독자까지 맡으면 국가는 선수와 심판을 겸하게 됩니다.

공공기관이라고 언제나 공익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공공이 토지를 관리해야 한다는 말이 국가기관이 토지개발을 독점해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공정한 규칙을 만들고 민간 경쟁을 살리며 개발이익을 투명하게 환수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공공의 역할이 커질수록 더 강한 외부감사와 시민 감시가 따라야 합니다.

시민사회가 정부의 협력업체가 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사회적기업·협동조합·마을기업 같은 사회연대경제 조직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돌봄·환경·지역문제를 이들 조직이 맡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가 돈을 주고 사업자를 선정하고 성과를 평가한 뒤, 다시 그 조직들을 정책 협의의 시민 대표로 부르는 구조가 굳어지면 문제가 생깁니다. 정부 지원을 받는 단체는 정부정책을 감시하기 어렵습니다. 시민의 신뢰보다 정부 공모사업이 더 중요해질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시민사회가 커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가사업을 대신 수행하는 조직만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국가의 외곽에 만들어진 ‘준정부 사회’에 가깝습니다. 국가의 돈이 끊기면 사라지는 조직을 자율적인 시민사회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개별 정책보다 전체 흐름을 봐야 합니다

기본사회위원회, 농어촌 기본소득, 지역화폐, 국민성장펀드, LH 중심의 주택공급, 사회연대경제 지원을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각각 정책적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곳에 모아놓으면 공통된 방향이 보입니다.

국가가 국민의 기본생활을 정하고, 돈의 사용처를 설계하며, 미래산업과 투자기업을 고릅니다. 토지를 보유하고 주택을 공급하며, 사회적 조직을 선정하고 지원합니다. 국가가 시장의 실패를 고치는 수준을 넘어 돈·토지·산업·복지·시민사회의 방향을 함께 설계하는 모습입니다.

오늘날 국가주의는 반드시 기업을 빼앗고 토지를 몰수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소유권을 민간에 남겨두면서도 보조금·정책금융·세금·지역화폐·인허가·정부위원회를 통해 경제와 사회의 방향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싸움보다 실제 권력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봐야 합니다.

누가 돈을 나누는지, 지원받을 기업과 단체를 누가 고르는지, 정책이 실패하면 누가 책임지는지 물어야 합니다. 시민에게 다른 길을 선택할 자유가 있는지, 정부가 지원한 조직이 다시 정부정책을 지지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답이 계속 대통령과 위원회, 관료와 공공기관으로 모인다면 분명한 경고 신호입니다.

폴라니를 넘어 ‘시민화’로

폴라니는 시장이 사회를 삼키는 위험을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사회를 시장에서 구해낸 뒤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인지에는 충분한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씨드의 답은 국가가 아니라 시민입니다.

씨드가 말하는 강한 사회는 정부가 모든 생활을 책임지는 사회가 아닙니다. 정부 지원을 받는 단체가 많은 사회도 아닙니다. 시민이 스스로 판단하고, 서로 협력하고,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며, 국가와 시장을 함께 감시하는 사회입니다.

국가는 유능해야 하지만 제한되어야 합니다. 시장은 자유로워야 하지만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사회는 국가와 시장 어느 쪽에도 예속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 중심에는 정부가 무엇을 줄지 기다리는 시민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공동체에 책임을 지는 씨앗시민이 있어야 합니다.

폴라니가 시장화와 사회적 보호라는 두 움직임을 말했다면, 씨드는 여기에 ‘시민화’라는 세 번째 길을 더해야 합니다. 시장의 지배에서도 벗어나고 국가의 보호에만 의존하지도 않는 시민을 키우는 일입니다. 국가가 사회를 대신하지 못하게 하고 조직된 집단이 시민의 목소리를 독점하지 못하게 하는 일입니다.

  • 시장은 사회 안에 있어야 합니다.
  • 그러나 사회는 국가 밖에서 독립적으로 서 있어야 합니다.